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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

프로이트의 자기분석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발견

by 건강한집수니 2022. 6. 2.

1896년에 아버지가 죽은 후, 프로이트는 대략 1896년부터 1899년까지 지속되었던 자기 자신의 정신분석에 착수하였다. 그의 "자기-분석"- 그가 플리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불렀던 것처럼 - 은 대부분 자신의 꿈들을 토대로 하고 있는데, 이 덕분에 그는 정신적인 삶에서 꿈이 하는 역할뿐 성욕이 자신의 아동기에 미치는 중요성에 대해서도 깨닫을 수 있었다. 

나중에 (두 살에서 두 살 반 사이에) 엄마를 향한 나의 리비도가 깨어났습니다. 즉 엄마와 함께 라이프치히에서 비엔나로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밤을 같이 보낼 것이고, 그러면 틀림 없이 엄마의 벗은 몸을 볼 기회가 있을 것이었지요(1887-1904)

그는 같은 편지(1897년 10월 3일-4일자)에서 계속해서 말한다. "나는 한 살 아래 남동생(몇 달 후에 죽은)을 적대적인 소망과 순수한 아동기 질투심으로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 그의 죽음은 나에게 (자기-) 비난의 싹을 심어주었습니다"

일주일 뒤 그는 처음으로 자기분석에서, 그가 10년도 더 지나서야 이름을 붙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발견했다고 썼다.

나의 자기분석은 사실상 현재 나에게 가장 필수적인 것이며 만일 끝을 맺게 된다면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될 것 같습니다. [...] 나는 나 자신의 사례에서도 역시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시기하는 현상을 발견했으며, 이제 그것이 초기 아동기의 보편적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오이디푸스 왕이 예정된 운명을 거스를 데서 오는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차지한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887-1904]

그 편지에서 프로이트는 단지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에서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소망을 지닌, 남아에게 일어나는 직접적인 형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나중에 그는 여아의 직접적인 형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부모들 간의 관계에서 어머니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소망을 지닌 - 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리고 더 나중에는 남아와 여아 모두에게 일어나는 전도된 형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해 계속 설명한다. 모든 개인에게 같은 성을 가진 부모와의 동일시에 토대가 되는 직접적 형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반대 성을 가진 부모와의 동일시에 토대가 되는 전도된 형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같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프로이트는 플리스로부터 빌려온 심리적 양성성에 관한 견해를 환상 자료에 적용시킬 수 있었다. 그러한 견해는 프로이트가 남성 혹은 여성적인 성정체성에 있어 해부학적이고 생물학적인 수준뿐아니라 심리적 차원에까지 미치는 양성성의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비록 프로이트가 자기분석을 통해 자신에 대해 탐구하고 마음의 작용에 대해 가능한 한 완전히 탐구하려고 노력하면서 어느 정도 결정적인 문제들을 탐구할 수 있었지만, 그는 이런 종류의 내적 성찰이 극복 할 수 없는 본질적 한계에 부딪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정신분석가 지망생이 자신의 무의식적 저항을 해결하고 전이 관계의 극복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처음에 다른 정신분석가에게 의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느꼈다. 프로이트는 계속해서, 일단 분석이 끝나면 몯느 분석가는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 자기분석 과정에 착수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프로이트의 유혹 이론에 대한 논쟁 : 1984년에 프로이트의 기록물들을 조사해 1985년에 플리스에게 보낸 프로이트의 모든 편지들을 출간했던 제프리 M.은 [진신에 대한 목력: 유혹 이론에 대한 프로이트의 억압] 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논쟁의 여지가 많은, 프로이트가 유혹 이론을 포기한 소위 "진정한" 이유를 다루고 있다. 매슨에 의하면 프로이트가 이론을 포기한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환상화된 유혹 이론을 고안해냄으로써 그는 아버지들을 자신들의 딸을 유혹했다는 정당한 비난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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